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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을 목표한 정원이 우리에게 묻는 것

메덩골정원에서 발견한 공간의 태도, 그리고 사람을 맞이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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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연구소 2026.04.29 15:02 조회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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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을 목표한 정원이 우리에게 묻는 것

메덩골정원에서 발견한 공간의 태도, 그리고 사람을 맞이하는 법

입장료 5만 원. 주차장에서 정원 입구까지 걸어 들어가는 데 약 5분이 걸린다. 경기도 양평, 메꽃이 흐드러지던 골짜기에 6만 평 규모의 정원이 들어섰다. 13년의 기획 끝에 2025년 가을 첫 문을 연 메덩골정원은 국내 정원·수목원 역사상 가장 높은 입장료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정원에는 화려한 꽃밭이 없다. 이국적인 수종도 없다. 대신 돌담길이 있고, 빨래터가 있고, 벼와 고추가 자라는 밭이 있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물 한 줄기까지 전부 의도를 가지고 놓았다. 자연적인 것이 하나도 없는 정원. 그런데 그 정원이 가장 자연스럽다.

이 공간은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요구하는가. 출장 보고서를 쓰면서 이 질문이 계속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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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나에도 문장이 있는 정원

메덩골정원의 한국정원 구역은 세 겹의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민초들의 삶. 남도 돌담길을 따라 벼, 고추, 옥수수가 자라는 밭이 이어진다. 흉년이 들면 메꽃 뿌리를 캐어 연명하던 구황의 땅이 이 정원의 출발점이다. 둘째, 선비들의 풍류. 용반연 연못과 서섬암 바위가 마주하고, 병산서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선곡서원이 서 있다. 셋째, 한국인의 정신. 벼락 맞은 서낭당 고목처럼, 시련을 견디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의 역사가 상징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정원을 만든 설립자는 수천억대 자산가였다가 이른 은퇴 후 공허함 속에서 니체의 철학을 만났다. 삶이 다하면 자산도 이름도 사라질 것을 알았고, 후대에 남길 유산으로 정원을 선택했다. 건축가 승효상, 조경가 이재연, 석공 명인 이시희. 각 분야의 장인이 13년간 참여했다. 이들의 목표는 하나였다. 천년 이상 이어질 정원. 일본이나 중국의 영향을 배제한, 오롯이 한국적인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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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슨트 운영 방식이다. QR코드와 책자를 통한 디지털 안내는 기본이지만, 매일 지정된 가이드가 고정 시간에 도슨트 투어를 진행한다. 사전 신청이 필요 없다. 그 시간에 도착하면 된다. 해설자는 방문객의 신청을 기다리지 않고, 방문객이 오든 오지 않든 그 자리에 서 있다. 주차장 입구부터 나갈 때까지, 모든 동선을 안내하는 이 시스템은 정원의 가치를 전달하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이 정원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다.

기다리는 공간과 맞이하는 공간

여기서 한 가지 구조가 보인다. 메덩골정원에는 방문자가 어리둥절해하는 순간이 거의 없다. 주차장에서 입구까지의 동선, 입구에서 정원까지의 흐름, 정원 안에서의 이동 경로. 모든 것이 사전에 설계되어 있다. 방문자가 '어디로 가야 하지?' 하고 멈칫하는 첫 3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정원은 찾아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공간이 아니라 '맞이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기다리는 공간은 사람이 와야 비로소 작동한다. 맞이하는 공간은 사람이 오기 전부터 이미 준비되어 있다. 도슨트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 돌 하나에도 의미를 새겨 놓은 것, 동선 전체가 하나의 서사로 흐르도록 설계한 것. 이 모든 것이 맞이함의 구조다.

그리고 이 구조의 밑바닥에는 분명한 철학이 있다. 메덩골정원이 1000년을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이유는 규모가 커서가 아니다. 공간의 모든 요소에 '왜 이것이 여기 있는가'라는 질문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청헌의 기둥에 적힌 16개 주련, 양평의 추위에 적응한 감나무를 굳이 찾아 심은 이유, 사각 연못 함소연의 물이 메덩내로 다시 흐르게 한 설계. 하나도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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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돌아봐야 할 지점이 여기에 있다. 우리의 성지에도 역사가 있고, 서사가 있고, 정신이 있다. 그런데 그 역사를 방문자가 발견하도록 공간이 설계되어 있는가. 안내판에 적힌 설명은 읽히는가. 주차장에서 첫 번째 건물까지, 방문자가 멈칫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는 동선이 있는가. 해설하는 사람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리에서 사람을 맞이하고 있는가.

메덩골정원의 설립자가 가진 것은 돈과 땅만이 아니었다. 공간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가치와 목적, 철학이 분명했기에 각 분야 전문가들의 재해석이 가능했고, 그 재해석이 일관된 방향으로 구현될 수 있었다. 정원 하나를 짓는 데 13년이 걸린 이유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붙드는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정원의 디자인이 아니라 질문의 밀도다.

우리 공간에서 당장 바꿀 수 있는 세 가지

첫째, 첫 3분의 동선을 점검한다. 주차장에서 내려 첫 번째 건물에 도착하기까지, 방문자가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있는가. 바닥의 안내선 하나, 입구의 환영 문구 하나가 공간의 첫인상을 바꾼다. 메덩골정원처럼 거창한 설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시선이 처음 닿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시작이다.

둘째, 해설의 시간을 고정한다. 신청이 있을 때만 안내하는 방식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리에서 맞이하는 방식으로 바꿔 본다. 사람이 오든 오지 않든 준비되어 있는 공간은 찾아온 사람에게 전혀 다른 메시지를 준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는 메시지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

셋째, 공간의 요소에 이유를 붙인다. 건물 앞의 나무, 마당의 돌, 벽에 걸린 액자. 그것이 왜 거기 있는지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가. 메덩골정원에서 돌 하나도 우연이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 공간의 요소 하나하나에 이유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 공간에 서사를 만드는 가장 작은 시작이다.

지금도 메덩골정원하면 눈에 선한 장면이 있다. 사람보다 더 큰 바위에 자라난 소나무. 메덩골은 이 바위를 찾아다 이곳 정원에 놓았다. 그것이 가진 의미와 의도가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다.

메덩골정원은 꽃이 아름다운 정원이 아니다. 질문이 아름다운 정원이다. 돌 하나에 왜 이 돌인가를 묻고, 나무 한 그루에 왜 이 자리인가를 묻고, 물 한 줄기에 어디로 흘러야 하는가를 물었다. 그 질문들이 13년 동안 쌓여 공간이 되었고, 그 공간이 1000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게도 역사가 있고, 정신이 있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문제는 이야기의 부재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공간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설계의 부재일 수 있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공간은, 찾아온 사람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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